2023년 11월 PIE 33장 <Balance 이창환 대표님>
인터뷰 대상자: Balance 이창환 대표님
Q1.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산업공학과 08학번이고, 89년생으로 일반고를 졸업하고 현역으로 입학하였습니다. 산업공학과를 지원할 때 서울대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의대를 지원했는데요, 지방 의대보다는 서울대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서울대를 나오셔서 저도 서울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했죠. 많은 과 중에서 산업공학과를 선택했던 건, 통계, 수학은 좋아했지만 과학은 상대적으로 그저 그렇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산업공학과를 졸업하면 언젠가 창업할 때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도 했습니다.
학교생활은 잘 했던 것 같습니다. 학생회 같은 활동은 해보지 않았지만, 학점을 잘 챙기고 계절학기도 꼬박꼬박 들으며 졸업했죠. 저는 학교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해서, 과에서 1등을 여러 번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공계 장학금도 받았고, 학교에서 주는 성적우수 장학금을 졸업할 때까지 매 학기 받았습니다. 혹시 MCSA라고 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경영대 동아리인데, MCSA, FCRC, IFS 등이 있는데 그 중 원조 격으로 불리는 경영전략학회입니다. 저는 이 동아리에서 컨설팅을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병역 특례 이후, 제가 런칭한 서비스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을 받았는데, 하나는 매출이 나왔고 다른 하나는 현대 해상에 팔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PM, PO 등의 역할을 맡아서 전략을 짜보고 싶다 해서 복학 후 25살부터 MSCA 활동을 했죠. 1년 활동을 했는데, 학교 수업과 병행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없어 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집에 잘 가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현대 자동차에 입사했었고, 현대 자동차의 남양연구소에서 4년 정도 일하다가 퇴사해 초기 VC 스프링 캠프에서 일을 하다가 현재는 나와서 창업하고 있습니다.
Q2. 창업하고 현재 운영 중이신 Balance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의 비전은 ‘5만원짜리 영양제를 2만 5천원에 팔겠다’입니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이냐고 하면, ‘영양제의 가격 구조에 묻어 있는 마케팅비를 빼겠다’로 답변할 수 있겠네요. Balance와 비슷한 사례는 브랜드 단위로는 많이 있고 시장 단위로 보면 조립 PC 시장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주연테크라는 곳에서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170만원 정도에 데스크탑을 맞췄었는데, 지금은 170만원보다는 싸게 웬만한 PC를 맞출 수 있죠. 다나와, 컴퓨터존이라는 큰 회사들이 용산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이윤이 집중되어 있다가, 비로소 시장이 효율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이러한 시장 구조에서는 누군가가 물건을 독점해서 1만원짜리를 5만원에 파는 행위는 불가능합니다. 저희는 건강식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건강식품의 원가율은 10~15% 정도로 굉장히 낮습니다. 거의 커피 수준이지만 마케팅 없이는 판매가 어렵기 때문에 제품 기획을 할 때부터 마케팅 예산을 잡아 놓고, 가격을 비싸게 받는 거죠. 예를 들어, 대기업들의 경우 모델도 써야 하므로 모델료도 포함해서 제품 가격을 측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만약 저희가 이 부분을 없애고, 제품 본질에 집중해서 판매할 수 있다면 가격을 낮춰서 팔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양제 시장은 굉장히 큽니다. ‘영양제’의 가장 좁은 의미는 건강기능식품인데요, 제품의 뒤에 적혀 있는 식품의 유형이 건강기능식품으로 적혀 있는 경우에는 기능성 문구를 합법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희 회사의 첫 제품은 기타 가공품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식품 형태의 영양제, 짜 먹는 음료 형태의 영양제, 두부 스낵 등 다양한 형태의 영양제를 포괄하는 게 저희 비전입니다.
Q3. Balance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영양제 시장을 건강기능식품 시장이라는 굉장히 좁은 의미로만 봤을 때도, 작년 기준으로 6.4조 시장입니다. 이는 매우 큰 편인데, 버티컬 플랫폼(Vertical Platform)이 없습니다. 대부분 영양제를 구매할 때 광고를 보고 바로 사이트로 들어가서 브랜드 몰에서 사거나, 네이버 쇼핑, 쿠팡에서 사는데요, 자세히 보면 이상한 구조입니다. 웬만한 대형 시장에는 대부분 버티컬 플랫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패션 시장의 경우 지그재그, 무신사, 29cm 등 계속 버티컬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고, 화장품 시장의 경우 화해를 필두로 여러 플랫폼이 등장했었죠. 또, 오늘의 집은 시장 형성이 되지 않은 곳에 진입해서 시장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테리어 시장은 너무 크기 때문에 인테리어 소품 시장을 시작했는데, 그 시장에서 버티컬 플레이어로서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죠. 이렇게 많은 시장에서 버티컬 플랫폼이 있는데, 영양제 시장은 그 규모에 비해 버티컬 플랫폼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저희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3-1. 비전적인 계기 외에도 혹시 개인적인 계기도 있을까요?
사실 창업을 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경우 개인적인 계기가 더 클 것입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창업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제 개인적인 계기를 말씀드리면,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출판사를 계속하셨는데 잘 되다가 접고, 또 잘 되다가 접는 것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창업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또 하나는 제가 팀을 이끄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팀플은 제가 팀장을 맡았고, 동아리에 들어가면 항상 리더 자리를 맡았었죠.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정치인이 국민에게 주는 영향보다 국민이 매일매일 업무를 하는 회사가 국민에게 주는 영향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52시간만 일하도록 하는 것은 아주 큰 결정이지만, 한 회사 내에서는 ‘그냥 금요일 3시에 퇴근합시다.’라는 대표의 한마디면 끝나잖아요. 그래서 회사의 영향력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봤을 때, 저는 제 가치관에 맞는 조직을 꾸리고 싶다는 결정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Q4. Balance가 국내 1위 건강식품 데이터 커머스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한 Balance만의 전략이나 기술은 무엇이 있나요?
저희가 1위라고는 하나, 너무 작은 초기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지금은 어떻게 시장을 발견했냐 정도의 의미에서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매출이 1000억 정도 되었을 때 이 질문에 답을 드리면 좋을 것 같지만, 기회 발견의 측면에서 먼저 답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제가 처음에 창업할 때는 영양제를 판매했습니다. 혹시 미디어 커머스(Media Commerce)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미디어 커머스는 2016년도부터 유행을 했는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굉장히 자극적인 동영상 광고를 게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매트리스를 톱으로 자르고, 핸드폰에 케이스를 씌운 뒤 15층 아파트에서 바닥에 놓은 매트리스로 던지는 거예요. 15층 아파트에서 떨어뜨려도 안전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죠. 이렇게 자극적인 콘텐츠로 제품을 판매하는 기술을 미디어 커머스라고 합니다. 그로스 마케팅(Growth Marketing)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는데, 만약 페이스북에서 광고하게 되면 내 광고 소재를 몇 명이 언제, 얼마나 클릭했는지, 클릭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마케팅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로스 마케팅의 등장 이전에 TV에서 광고했을 때는 40대 여성이 가장 많이 보는 방송 뒤에 40대 여성을 타게팅한 광고를 붙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품이 팔렸을 때 이것이 그 광고 때문인지, 버스 광고 때문인지, 라디오 광고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죠. 그런데 현재는 페이스북에서 정확한 이유를 가르쳐 주기 때문에 마케팅 전략이 굉장히 고도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사업을 하기 위해 영양제를 출시했습니다. 영양제의 원가율이 낮은 것은 원래 알고 있었고, 주변 친구들이 많이 사업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라라스윗이라는 저칼로리 아이스크림도 제 현대차 동기가 미디어 커머스로 시작했고, Blank, APR, NERDY 등의 기업도 마찬가지죠. 저도 영양제를 이용한 미디어 커머스 회사를 만들어 첫 제품을 팔고, 후속 제품을 만드는 식으로 사업을 키워 나가려고 했는데, 시장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우울증 영양제는 국내에서 제가 처음으로 만들었거든요. 제가 만든 뒤 웨스트(West)에서 카피를 하기도 했는데, 제 스토리를 담아서 낸 영양제가 생각보다 시장에 빨리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자리 잡은 뒤에는 그 이상으로 매출이 올라가지는 않았죠. 후속 제품으로 뭘 낼지 고민하던 중 아까 말씀드린 기회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품은 너무 많고 판매가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Balance를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Balance의 전략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스타트업은 뭔가 뛰어난 전략을 가지고 쭉 밀고 가지 않고 계속 전략을 바꾸거든요. 맨 처음에는, 영양제의 식품 표시 광고법에 집중했습니다. 식품 표시 광고법에서는, 영양제의 상세 페이지에서 ‘이 영양제를 먹으면 우울증에 도움이 돼요’라는 말을 기재할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생각한 것은, 콘텐츠 커머스 형태로 이것을 바꿔보자는 것이었죠. 이 영양제가 왜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지를 별도의 글을 통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인트존스워트라는 성분은 어떤 기전으로 도움이 되는지, 트립토판은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하면 소비자의 구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스토리형 콘텐츠 커머스의 시초는 왓이즈(WHAT is)입니다. 왓이즈를 보면, 그 메이커가 어떤 사유로 제품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가 절반 이상이거든요. 카카오 메이커스도 펜션 예약 건을 판매할 때 스토리가 굉장히 길고, 감성적인 문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을 아침에 아침 이슬을 맞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등의 문구로 시작하고, 상품 리스트에는 가격이 없는 식입니다. 29cm도 스토리형 커머스에 가깝죠. Balance도 이에 착안해서, 가격과 할인율, 제품 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의미를 부여해서 판매하는 형태로 시작했고, 그때 투자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콘텐츠라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임팩트가 굉장히 약했습니다. 여기서 저의 특징이 힘을 발휘했는데요, 저는 산업공학도로서 무엇이든 데이터화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를 들어, 암반수 안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고, 각각이 몇 퍼센트 들어 있는지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홍삼을 사더라도 농축액과 고형물의 퍼센트가 정해져 있는데, 제품을 보면서 계산하곤 했죠. 함량이 더 높은, 가성비 좋은 제품을 사는 것을 선호하는 제 성격을 바탕으로, 상품을 등록할 때, 썸네일과 제품 상세 페이지, 이미지로만 등록하지 말고, 그 제품이 가지고 있는 성분들을 전부 데이터화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제품이 8가지 정도의 성분을 가지고 있다면 각 성분의 정의와 성분의 함량을 입력하게 한 것이죠.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그 성분에 기능성을 연결해서 이 성분이 얼마 이상 들어가 있는 상품은 이 기능성을 표현한다는 알고리즘, 즉 간단한 규칙을 정의했습니다. 이로써 룰 베이스로 상품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다나와라는 기업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조립 PC에서도, 이 제품의 CPU 스펙, 메모리 등을 모두 기재해서 검색해 볼 수 있잖아요. 이를 영양제에 적용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다음으로는 비디오 커머스를 시도했습니다. 2개의 멀티비타민이 있을 때, 하나는 성분이 12가지 들어있고, 다른 하나는 23가지 들어 있다고 하면 후자가 좋아 보이지만, 후자는 함량이 30%밖에 들어가 있지 않고 전자는 100%, 200% 들어 있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요, 이것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것이 비디오 커머스입니다. 비디오 커머스도 반응은 괜찮았지만, 역시 시장 임팩트는 작았습니다. 왜냐하면, 고객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따져 가면서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음으로 시도했던 것이, 고객들에게 비교하게 시키지 말고 우리가 직접 비교하고 더 합리적인 것을 가르쳐 주는 시스템이고, 지금은 ‘떠먹여 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품을 탐색하는 방법에 집중했습니다. 저희는 기능을 굉장히 많이 냈는데, 예를 들면 어떤 영양제의 정제 형태도 있고, 구미, 젤리, 액상, 분말 등 다양한 형태가 있을 때, 동일한 함량인데 정제가 아닌 액상 제품을 찾으면 우리는 고객에게 바로 가르쳐 줍니다. 네이버 쇼핑이나, 쿠팡 등의 기업에서는 데이터베이스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기능이죠. 이러한 최적 성분 찾기 기능에는 제형 찾기, 동일한 성분에서 저렴한 제품 찾기 등이 포함됩니다.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어떤 알고리즘이 룰(Rule)로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겠죠. 따라서 저희는 이 룰로 상품을 선정해 사람들에게 이 영양제를 먹으라고 가르쳐 주는 떠먹여 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희의 전략이 무엇이냐고 하면, 마케팅 없이 영양제를 팔고 싶다는 것이 목표고, 마케팅 없이 어떻게 팔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때 고객들의 취향에 맞게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추천을 해주자는 것이 전략인 것 같습니다.
Q4-1. 객관적 사실만 보고 영양제를 구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제약 회사의 이미지를 보고 결정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러한 이미지를 Balance에서 제공해 줄 수 있나요?
저희는 그것을 ‘고객의 소비 취향’이라고 정의하는데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두 영양제가 있을 때, 둘의 함량이 똑같은데 하나가 싸면 상식적으로 싼 것을 먹는 게 좋다고 가르쳐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온라인 커머스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떤 고객은 그냥 그 제품이 노란색이어서 좋고, 다른 고객은 우울하면 보라색이라고 생각해서 보라색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죠. 그냥 조아제약이라는 회사의 이름이 좋다거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끝난 뒤 본 홍삼이 좋아 보여서 구매하는 고객들은 자신만의 소비 기준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계몽시키기보다는, 고객의 소비 기준에 맞는 것을 가장 빨리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제품을 싸게 구매하는 것은 당연히 좋아하지만, 이 제품을 다른 제품으로 바꾸는 것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에 원하는 브랜드만 체크해서 살 수 있는 기능 등을 도입해 고객의 소비 취향에 맞춘 제품을 최대한 빨리 찾아 주는 것이죠. 굉장히 산업공학다운 서비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5. 현재 Balance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가장 영향을 주었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신사업 경험이 아무래도 가장 크겠죠. 창업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당시의 저는 허들을 계속 못 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실패를 보고,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봤기 때문에 창업의 마지막 심리적 허들을 못 넘고 있었는데, 신사업 경험으로 인해 Balance를 창업하고 운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업무적으로, 데일리로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은 개발자로 일했던 경험입니다. 저는 개발자로 일하면서 머릿속에 구조화가 깔끔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 휴지 곽을 하나 만들더라도, 저걸 어떻게 해야 논리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구조화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죠. 모든 개발자가 똑똑한 것은 아닌데, 심지어 저희는 머리도 좋잖아요. 개발을 배우면서 단계적으로 논리가 정립된 것이 현재 업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 보면, 이건 산업공학과에서 ‘배웠다’기보다는 ‘훈련되었다’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집착에 가까운 데이터화가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성격이 조금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고, 제가 성격에 맞는 학과를 온 것이겠죠. 아마 대부분의 산업공학도가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RPG 게임을 할 때도, 그냥 하면 되지만 저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냥을 하고, 레벨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몬스터는 경험치를 많이 주는데 재생성 타임이 느리네. 그러면 2시간 뒤에 레벨업이 안 되겠다.’ 등의 생각을 하면서 게임을 했죠. 이러한 제 계산적인 성향이 현재 Balance의 시스템을 만들 때 똑같이 발현된 것 같습니다.
Q5-2. VC 심사역을 하신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으셨나요?
주변 사람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도, 공부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공부를 잘하게 되었던 것처럼요. VC 심사위원은 굉장히 Risk Averse(위험 회피 성향) 한 직업입니다. ‘내가 스타트업 성장의 파이를 나눠 먹고는 싶은데, 월급도 받고 싶고, 한 회사에만 인생을 거는 것은 위험 부담이 있을 것 같으니 열 군데 정도에 골고루 투자해서 적은 수익을 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것이 심사위원의 자리입니다. 스타트업의 허들을 못 넘고 있던 저에게는 Risk Averse 한 상태가 좋은 돌다리가 됐죠. VC 심사역 일을 하다 보니,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이 지금의 저 같은 사람들보다 1년 전, 혹은 1년 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을 만들면 좋을까요?’라고 했던 친구가 갑자기 20, 30억씩 투자를 받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 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조금씩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즉, 굉장한 인생의 비전, 목표 같은 것보다도, 매일 어울리는 사람들이 항상 창업하고 있었다는 것이 제 창업에 영향을 많이 주었던 것 같습니다.
Q6. 창업하기에 이전에 현대자동차 개발자, VC심사역 등 그전까지 많은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각각의 일들의 계기가 무엇인가요?
아마 여러분들도 나중에 똑같은 고민을 하시게 될 것 같은데요, 제 첫 커리어는 어찌 보면 병역 특례지만 개발자잖아요. 개발은 어릴 때부터 정보 올림피아드를 해서 잘했는데, 25살에 복학하면서 MSCA라는 글로벌 탑 3 컨설팅 회사에 가는 것이 목표인 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동아리에서 활동하다 보니, 저도 기업을 분석하는 전략 분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컨설팅 회사에 가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고, 저도 같은 생각이었죠. 컨설팅이라는 것이 조언만 해 주고 빠지는 형식이다 보니, 기업에서 성과를 내도 컨설턴트는 가치를 느끼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무님이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자기 말은 힘이 약하니까 컨설팅사를 써서 한 15억원짜리 문장을 던지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렇기도 하고요. 그래서 컨설팅 쪽으로 가지 않고, 대기업의 전략팀 쪽으로 가는 것이 당시 졸업 예정자들의 트렌드였습니다.
한편, 한 번 Top에서 일을 하면, Low Level의 일을 하기 싫어집니다. 내가 무언가를 개발하고, 디자인하는 작은 일들 보다는 회사의 Top View에서 업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세팅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현대 자동차의 남양 연구소의 제품 기획팀에서 친환경 자동차 기획 일을 했습니다. 지금 도로에서 보이는 EV6나, 아이오닉 5 등의 자동차가 제가 입사한 지 2~3년 차에 기획했던 자동차들입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었는데, 저와 같이 업무를 하시는 분들은 그냥 회사에 입사해서 기획팀에 배정받으신 분들이었죠. 즉, 대단히 목적의식이 있어서 오신 분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6번 정도 연속으로 고과를 S를 받았습니다. 이때 저는 조금 자만심이 생겼고, 좀 더 제대로 배우고 싶고 여기서는 더 배울 게 없으니 컨설팅 쪽으로 가야겠다는 알량한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제가 컨설팅 쪽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스프링 캠프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갔죠. 그때 대표님을 보고, 너무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멋진 어른이셨고, 스타트업을 진심으로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함께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거기에 2년 정도 있었습니다. 이곳을 나오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창업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내가 해보지 않았는데 조언하는 것이 웃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Low Level부터 차근차근 밟아서 위로 올라가면, 모든 것이 다 보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Top View를 보게 되면, 공허한 이야기를 하게 되죠. 예를 들어, 백종원이 잘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백종원은 ‘요리를 잘하는 경영인’입니다. 아무도 백종원을 셰프라고 하지 않고, 경영자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요리를 굉장히 잘하고, 웬만한 농산물의 원가를 매년 알고 있습니다. 농산물을 어디서 사 오는지, 고기의 어떤 부위가 어떤 맛인지, 손질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다 꿰뚫고 있다 보니 주방 컨트롤이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이제 홀에 신경을 쓰면 되겠죠. 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게 되면, 홀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를 줄 수 있으니 홀을 잘 맡을 수 있는 사람을 키워서 맡기고, 본인은 비로소 경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한 지점에 대한 경영을 알게 되면 이를 토대로 나와 똑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프랜차이즈를 하나씩 늘릴 수 있는 것인데, 저는 거꾸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사업자 등록증조차 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팀 빌딩을 해본 적이 없는데 투자를 하고 있던 거죠. 그러다 보니 회사에 조언해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초기였으니 보통 1억에서 5억 정도의 투자를 하는데, 한두 명 치 연봉밖에 안 되는 적은 돈이지만, 내가 너무 아는 게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괴리감이 있었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창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두 가지를 바탕으로 VC 캠프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Q7. 여러 일을 해 오셨는데, 산업공학과가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나요?
일단, 우리는 머릿속에 ‘효율성’이 박힌 채로 졸업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류 처리 과정에서 발주를 하고 재고 관리를 하는데, 웬만큼 큰 물류사들도 노트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다음에 이것을 DB에 입력하죠. 이것이 산업공학도들에게는 불편한, 참을 수 없는 비효율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시스템화하지?’와 같은 생각을 습관적으로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영향 같습니다. LP(선형계획법)에서 계산식을 배웠던 것은 다 까먹잖아요. 계산식은 이론을 배울 때 원리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외우고 있을 필요도 없죠. 그래서 이론적인 부분 보다는, 효율을 추구하는 마인드 셋을 가지고 졸업한 것이 가장 큰 복인 것 같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그게 다라는 점입니다. 즉, 효율적인 생각을 하는 마인드만 가지고 졸업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부분은, 제가 아무리 어필하려고 해도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데이터 마이닝 랩을 생각했을 때 당시에는 조성준 교수님, 박종원 교수님 랩이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학문적인 것을 원하고, 나중에 애플리케이션 단위보다는 카드사와 같이 데이터가 많은 곳에 들어가서 분석하는 분석가가 되고 싶다면 조성준 교수님 랩을 선택했었고, 학생 친화적으로 조금 더 실용적인 것은 원한다면 박종원 교수님 랩을 선택했었죠. 하지만 랩에 들어간다고 해도, 학부생 시절에 컴퓨터 공학과나, 수리과학부, 물리천문학부를 졸업하고 데이터 마이닝, R을 제대로 배운 친구들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수학적 능력이 그들만큼 뛰어나지 않으니, 이 부분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회사가 크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될수록 기초가 더 중요해집니다. 즉, 나는 수학적으로 뛰어나다, 아니다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약 학부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상적으로는 물리학과나 수학과를 복수 전공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 뒤 석사 과정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 제 이상형이고, 현실적으로는 제가 수리 논리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산업공학과에서 2, 3학년이 넘어가면 이론을 공부할 수업은 별로 없는데, 이것의 바탕이 되는 실력을 갖출 수 있는 학문을 깊이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있죠. 경영학 같은 학문을 공부하기보다, 컴퓨터 공학에서 메모리를 관리하는 로직을 공부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Q8. 창업이나, 개발자 일을 해오며 산업공학과로서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직접 채용을 하시는 대표님들이나, 채용 담당자분들은 산업공학과를 좋아하시는데요, 제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산업공학과 졸업생을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으로 인식하는구나’와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문과로 치면 경영학과가 똑똑해 보이는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서울대 경영학과라고 하면 멋있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산업공학과가 자랑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산업공학과의 가치는 아까 말했던 것과 동어 반복인 것 같아 생략하겠습니다.
참관 QnA
Q. 앞서, 졸업하면 마인드셋만 남는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혹시 이론적인 부분 말고도 팀플에서 어떤 결과를 얻었던 경험이나 실무 경험과 같은 것도 도움이 되었을까요?
저는 도움이 되었어요. 사실은 팀플이 사회의 축약이거든요. 그러니까 팀플에서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이 서울대에는 없을 줄 알았는데 있잖아요. 결국에는 다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에요. 무임승차를 한 친구도 다른 대학의 사람들과 연합해서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그 친구가 팀장을 맡아서 주도적으로 할 거예요. 그래서 팀플이 사회의 축약인데,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캐릭터인지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팀플에서 제가 잘하는 것을 많이 발견했는데, 이렇게 내가 잘 하는 아주 작은 부분들을 느끼고 발견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회의를 이끌어가는 것을 잘했어요. 팀플을 하다 보면 자꾸 주제가 넓어지고 정리가 잘 안 되거든요. 그러면 이제 제가 “저희 대화 주제를 세 가지로 나눠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하나씩 할까요?”라고 말하면서 안건을 정리하고 주제 별로 진행을 했어요.
또, 저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팀플이 있는 수업 위주로 들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사회에 나오고 회사에 오면 많은 팀플을 하게 되는데, 대학교에서 하는 팀플과 똑같아요.
대표님의 다른 조언
전에 나왔던 이야기기 중에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가 산업화를 겪으면서 취업이 근본이라고 생각하니까 실용 학문들의 입결이 높아지는 현상들이 있지만, 아버지가 학교를 다니실 때는 물리학과가 1등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원래 미국이나 유럽권은 대체로 순수 학문이 학부 때는 입결이 제일 높아요. 그렇게 대학교 4학년까지는 순수 학문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석사를 가서 그때부터 실험을 하는 거죠. 저는 이렇게 실용을 뒤에서 할수록 탄탄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방향성만 가지고 있으면 돼요. 내가 4년 만에 졸업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1, 2학년 때 이론에 관련된 수업들을 다 들어버리고, 3, 4학년 때 팀플 수업을 하는 거예요. 또는 내가 박사까지 할 생각이면, 1학년 때 복수 전공이나 연합 전공과 같은 것을 열심히 하면서 컴퓨터나 수학에 관한 과목을 각자의 역량대로 최대한 많이 수강하고 북스터디를 하고, 석사를 가서 연구를 하다가 박사 때 다른 프로젝트들을 하는 거죠. 이렇게 실용을 뒤로 계속 미뤘을 때 나오는 아웃풋이 너무 강렬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처럼 실용을 계속 쫓는 사람은 그 길을 못 가요.
Q. 저도 실용을 쫓는 사람인데, 또 특히 창업을 생각하고 있고 창업과 관련된 활동도 하다 보니까 학교를 다니는 것이 점점 더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사실 다음 학기부터 휴학을 하고, 졸업을 무기한으로 미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서울대 타이틀은 입학할 때 주는 거지 졸업할 때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신(Scene)에 있을 거면 졸업할 필요가 없고,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여기에서 성향이 많이 나뉘기 때문이에요. 성공한 벤처 사업가들 중에 서울대 중퇴가 굉장히 많아요. 그러면 여기서 인과관계를 잘 따져봐야 하는데, 중퇴를 했기 때문에 잘 되는 것이 아니에요. 본질적으로 중퇴를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를 생각해 보면, 내가 확실하게 믿는 것을 밀어붙이는 사람인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보통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10년을 열심히 공부해서 갖게 된 간판이고, 이 졸업장을 포기했는데 나중에 대기업으로 가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그때는 고졸로 지원을 하게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학점도 잘 챙기면서 졸업을 하잖아요. 저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창업에는 잘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성격이었고요. 그러니까 이러한 사람보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또는 군대를 빨리 갔다 와서 잘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인턴을 하면서 달리는 사람이 창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대표님, 개발팀장님, 디자인 팀장님한테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면서, 최대한 빨리 흡수해서 대학교 4학년 나이 정도 됐을 때 창업하는 사람이 더 잘 되겠죠. 이게 대학교를 중퇴하시는 분이 잘 되는 이유예요.
Q. 그러면 앞에서 말씀하신 Low Level의 것을 공부하면 좋다는 말이랑 조금 상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근본적인 학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괜찮을지에 대한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저랑 비슷한 패널티를 안고 가는 거죠. 제가 계속 뒤로 미루면 좋겠다고 말한 게, 한 번 ‘위’의 맛을 보면 ‘아래’로 못 돌아와요. 그래서 대표하다가 개발하는 사람이 잘 없어요. ‘위’에서 다시 ‘아래’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고요. 쉽게 말하면 선악과를 먹은 거예요. 내가 안 해도 누군가가 해주는 경험을 하고 나면 내가 굳이 그것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을 내가 깊게 파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깊게 파라고 시키는 게 편해져요.
제가 하고 있는 업계의 가장 Low Level은 장사예요. 발견 기능을 만들고 전략을 세우는 것은 거창한 이야기이고, 실질적으로는 고객이 우리 사이트에 들어왔을 때 결제 완료를 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때는 사람들의 지갑을 여는 장사가 기본이에요. 우리가 쇼핑할 때 판매원이 우리가 물건에 대해 얼마나 알아보고 왔을지, 물건을 얼마에 팔아야 할지 등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저는 제 Low Level을 절인 배추를 팔면서 채웠어요. 저는 장사를 하고 싶어서 커머스(Commerce)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창업을 했는데, 팔 수 있는 게 없어서 할 게 없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절인 배추를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그날 계약을 하고 그날 스마트 스토어를 만들어서 광고 세팅 등을 한 후에 다음 날부터 팔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때 배웠어요. 스마트 스토어를 잘 운영하시는 분들의 영상을 많이 보면서 내가 궁금한 것을 찾아봤어요. ‘키워드 세팅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SEO가 무엇의 약자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가?’, ‘좋은 툴은 무엇인가?’와 같은 것들을 찾아보면서 익혔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여자친구의 생일선물을 살 때, ‘생일 선물 추천’, ‘20대 여자 귀걸이’와 같은 것을 검색하잖아요. 이때 제품이 검색창의 상위에 있어야지 많은 고객들이 그 제품을 살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제품이 상위에 있도록 연습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 제품이 ‘강원도 정선 고랭지 절임 배추’인데 ‘강원도 정선 고랭지 절임 배추’라고 검색하는 사람 거의 없을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검색한 사람이 한 달에 약 30명이였어요. 이때 1페이지는 거의 몇 시간 만에 나왔어요. 그 다음에 ‘강원도’를 뺀 ‘고랭지 절인 배추’를 1페이지로 만들고, 다음으로 ‘고랭지 절인 배추’를 1페이지로 만들고, 마지막으로 ‘절인 배추’를 1페이지로 만드니까 연매출이 800만 원씩 나왔어요. 이게 제 첫 장사이자 제 Low Level이에요. 그래서 이 장사를 해보았더니 이러한 플랫폼을 운영할 때도 여러 가지 마인드 셋팅들이 생겼어요.
그리고 ‘우리가 큰 전략이 있는데 상품이 왜 안 팔리지?’라고 생각되면, ‘네이버 쇼핑에 검색하면 우리 상품이 나오는지’, ‘유입이 어디서 되고 있는지’를 찾아보고, ‘우리 상품의 상세 페이지에 몇 명이 들어왔는지’, 사람이 상세 페이지에 들어왔을 때 결제 시작을 몇 명이 눌렀고 결제 완료를 몇 명이 했는지’를 생각하면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요. 만약 우리 상품을 아무도 안 샀으면, 가격을 극단적으로 내려봐요. 이때 결제가 일어나면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적당히 자리를 잡아가는데 결제 전환률이 더 이상 안 올라가면, 리뷰 같은 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만약 리뷰가 하나도 없으면 친구들한테 부탁도 하면서 어떻게든 리뷰를 만들어요. 상세 페이지가 아무리 잘 돼 있어도 사람들은 실사를 보고 싶어 하니까 리뷰를 만들어야 하고, 리뷰가 한 40~50개 정도는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구매 전환율이 4~5%까지 올라가더라고요. 이것이 Low Level이에요.
이처럼 장사를 기본으로 아는 사람이 만드는 서비스가 다른 사람들의 지갑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 각자의 상황에서 Low Level은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 우리가 공부할 때 멋있는 문제를 풀면 재밌지만, 우리는 기초부터 닦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1부터 100까지 제곱했을 때 나온 숫자들 그냥 외웠어요. 그리고 예를 들어서 재무를 할 때는 숫자를 많이 봐야 하잖아요. 콤마 개수를 단위로 숫자가 100만인지 10억인지를 엄청 빨리 봐요. 이게 훈련이 안 된 사람은 이게 바로 안 보이거든요. 이런 것이 Low Level, 기초인 거예요. 그런데 이러한 Low Level들은 더럽고 귀찮다는 특징이 있어요. 그렇지만 Low Level들을 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대표님의 다른 조언
어떤 직무인가보다도 그 직무의 성향이 되게 중요해요. 만약 내가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데 사람 만나는 직무를 하게 되면 힘들어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최근에 회사에서 직무 변경이 있었는데, 그중에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직무가 없어졌어요. 퍼포먼스 마케터, 광고 운영자는 광고를 돌릴 때 광고 소재를 누군가가 만들어주면, 어떤 소재에다가 금액을 얼마큼씩 집행할지를 결정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직무가 없어져서, 광고 운영자였던 분의 직무를 서비스 운영자로 바꿨어요. 서비스 운영자는 우리 회사의 서비스에 있는 여러 기능들의 배치를 정하고, 어떤 기능이 제일 잘 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업무인데, 이 직무가 우리 회사에 없었고 제가 맡아서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직무를 바꿨는데, 이 분이 서비스 운영을 아주 잘해요. 왜냐하면 서비스 운영이랑 광고 운영은 너무 다른 일이지만, 남이 만든 것을 내가 운영한다는 점에서 성향이 같은 거예요. 이렇게 직무가 성향에 맞는 게 되게 중요하고, 그래서 자신한테 맞는 업무 성향을 찾아야 해요.
대표님의 다른 조언
만약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으면, 경험상은 하지 말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민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경험 삼아 하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이고, 스타트업을 할 때는 같이 달려야 돼요. 같이 대화를 한창 하고 있는데 갑자기 끊고 가면, 이제 그 대화에 다시는 못 끼는 거예요. 왜냐하면 대화가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자기 것만 얻고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중요한 로딩 할 때 같이 하기 어려워져요.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기 시작할 때는 경험을 얻기 위해서 간다라는 계기가 있지만, 일을 할 때는 올인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꼭 스타트업이 아니라 다른 기업에서 인턴을 할 때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분위기에 맞춰서 열심히 안 하면서 다니면 남는 게 없을 수 있어요. 그냥 이력서에 한 줄 쓰려고 하는 거라면 그렇게 퇴근하고 영어 점수 따는 게 맞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남는 게 없어요. ‘쟤는 왜 저렇게까지 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살면서 많이 유리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세상에는 아무도 그렇게 안 해서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게 더 유리해요.
그리고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는 굉장히 인기 있는 인재랍니다. 소개를 부탁하는 곳들이 꽤 있어요. 우리 회사에서 개발 제일 잘하시는 분은 서울대 경영대 출신이예요. 경영대인데 어떻게 개발을 잘하는지가 신기하지 않나요? 요즘 개발에서는 논리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옛날에는 이론적으로 컴퓨터 메모리에 대한 것 등을 모두 배워야지 개발을 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논리만 있으면 개발을 잘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논리력이 지금 개발자에게 가장 중요한 스펙이 됐어요. 그런데 아예 하이 퀄리티이고 굉장히 근소하한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 서비스에서는, 그 분이 Low Level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러한 서비스 개발하고 기획할 때는 굉장히 잘해요. 그리고 이러한 영역이 산업공학과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에요.
-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학생회 LOOK!E 소통팀
*위의 인터뷰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OFFICIAL_SNU_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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